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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오글거림' 을 못 이겨 언제 지워질지 모르는 일기와 잡담 그 사이 #7

md_pq 2021. 12. 21. 21:56

첫 눈이 이쁘게 내렸다.

집에서 소주를 간단히 일 페트 호로록 했다. 물론 이쁘게 내린 첫 눈 때문은 아니다. 편히 잠에 들기 위해서는 맞다. 최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못드는 탓에 매일 술 기운으로 잠에 들었더니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 아침마다 고생을 했다. 기상 후 꽤 오랜시간 고통을 동반해야 하기에 오늘은 음주 후 안하던 산책을 나갔다.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될 것을, 간단한 문제일수록 풀이를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. 산책은 집 앞에 놀이터로 갔다. 딱히 별 이유 없이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았다. 어느순간 우스꽝스러운 발자국을 발견한다.걸음걸이 웃기네 하고 피식한다. 발자국을 비교해보니 내 발자국이다. 많이 애정해서 네 번째인지 다섯 번째인지 재구매한 체커보드. 많은 사람이 신지만 분명 내 발자국이다. 눈 깜박이듯 숨 쉬듯 무의식에 행하는 내 걸음걸이가 이렇게 부자연스러울 수 있구나 생각한다. 누구보다 가까워야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의 누구가 근 20년만에 나를 보자마자 걸음걸이를 지적하던 것이 생각난다. 원래 먼 사이가 아니라 충분히 가까워야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이에서 나온 충고이기에 흘려 들은 기억이 난다. 같은 외각을 반복해서 걷는다.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지만 내 우스꽝스러운 발자국은 온데간데 없고 그냥 발자국들만 남아있다.

뒤 돌아보지 않고선 같은 길을 두 번 돌아야만 깨닫는 것이 있음을 느낀다. 그치만 눈길이 아니었으면 몰랐겠지.

‘고이다.’는 표현이 남 일이 아님을 느낀다. 아무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면 이미 여러겹 포개진 발자국 들에서 우스꽝스러운 발걸음은 찾지도 못했겠지.

오늘은 눈이왔기에 두 번 돌아 깨닫는 것도 있고 고이는 것에 대한 경각심도 든다. 눈이 오지 않는 계절이 오면 내 걸음걸이도 오늘의 생각들도 눈처럼 사라질까.

하지만 겨울은 다시 오고 눈도 다시 내릴 것이다. 고로, 반복하지 않아도 내 발자취를 돌아 볼 줄 알고, 불가피한 반복 속에서도 내 발자취 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미쯔차장 아빠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된 오늘이다.